노현상의 생각하는 건축 | 마당은 세상으로 이어지는 기차역과 같다. 2019-08-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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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내 집의 그림자가 내 땅에 드리워지지 않는다.
내 집의 그림자는 항상 이웃 것이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옆집의 그림자가 불편해지고 일조권 문제로 비화되어 법적 분쟁까지 생긴다.
도시에서는 건축으로 인해 이웃과 원수가 되는 것을 허다하게 본다. 이렇듯 도시 건축에서 마당이 없어짐으로서 이웃의 빈약한 민심과 삭막한 관계는 필연적이었고 사람들은 야박해졌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마당은 주거생활의 확장성이며, 작업공간의 연장이며, 심리적 영토이다. 우리 가슴에서 마당이 사라짐은 아버지의 나뭇지게 내려놓는 소리와, 어머니의 괘나리 짐 머리에 이고 싸리문 여는 소리와, 장맛비 내릴 때면 몇 시간이고 마당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갖 것들을 상상했던 문학의 소산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당은 세상으로 이어지는 기차역과도 같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웃에 좀 더 너그럽지 못할 때나 작은 생각으로 세상을 말할 때면 좋은 마당을 만들어주지 못한 아빠는 가슴이 먹먹했다.
옛날의 마당은 보통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구분한다. 앞마당에서는 동네의 크고 작은 잔치(society)가 있었고 고추도 말리고 깨 타작(work)도 하였다. 공동체의 공간과 작업공간의 연장이었다. 뒷마당은 작은 텃밭이 있거나 장독대 등(living)이 있었고 주거생활의 연장이었다. 앞마당은 맨흙이 드러나 있는 건조한 상태이고 뒷마당은 풀들이 자라 습했다. 그래서 앞마당과 뒷마당을 이어주는 대청마루에서는 대류현상으로 인해 공기의 흐름이 생겨 시원한 여름을 보냈다. 요즘은 마당에 잔디를 심는다. 에어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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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내의 공간은 마당인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마당을 흉내는 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마당은 방문이나 현관문을 열면 바로 연결되어야 하며 한 가구만 마당으로 진입할 수 있는 출입구가 있어야 한다. 복도나 엘리베이터를 통해야만 집으로 진입할 수 있거나 마당으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다수라면 그곳은 공적 공간으로 구분 되어 광장으로 봐야하며 요즘 핫한 용어로 OO아파트단지의 OO스퀘어(square)라고 해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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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최고의 고통은 사람과의 관계가 끊기고 운동장에도 나가지 못하는 작은 독방에 갇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고립감에 정신이 황폐해지고 고독의 극한점에 이르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반사회성을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람에게서 사유공간을 빼앗는 것은 세상을 빼앗는 것이고 꿈을 짓밟는 것으로 도시에서 반사회성으로 인한 사건사고를 보면 도시에 마당을 빼앗긴 것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에도 “사유공간(space of housing)”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는 사유공간(space of private)이 있다. 예를 들면 한쪽 팔을 폈을 때 타인이 그 거리 이상으로 접근하면 부담스럽거나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거리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가족은 반팔을 폈을 때의 거리까지 허용되며 연인 사이라면 한손바닥의 거리까지 허용한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버스나 지하철이 불편한 이유는 가족도 연인도 아닌데 몸이 스치거나 닿는다는 것이다. 궁금하다면 가족이라도 반팔의 거리 이상으로 접근해보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런 이유로 집이라는 건축도 사유공간(space of housing)인 마당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애초부터 사방으로 집 한 채의 폭만큼의 마당은 있어야 했다. 내 집의 그림자가 온전하게 내 땅에 드리워져야 이웃과의 관계가 호전되며 사회가 건강해질 것인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아쉽다.
- 유니브원 노현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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